금융상품이 시장에 존재한다고 해서 모든 투자자가 해당 상품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좌 개설과 최소 투자 금액, 복잡한 중개 절차 등은 개인투자자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에런 곽(Aaron Gwak) 리베라(Libeara) 대표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금융 인프라 구축에 나선 이유다.

리베라는 스탠다드차타드의 벤처 투자·육성 조직 SC Ventures에서 출발한 싱가포르 기반 실물 연계 자산(RWA) 토큰화 기업이다. 금융기관과 자산운용사가 기존 금융상품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기술과 관련 인프라를 제공한다.

곽 대표는 9월 23일 THE B JOURNAL과 진행한 온라인 인터뷰에서 리베라의 창업 배경과 사업 모델,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 가능성, 토큰화 금융상품의 법적 구조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금융상품 접근성 문제에서 시작된 창업

곽 대표는 리베라 창업 이전 글로벌 투자은행 UBS와 스탠다드차타드에서 채권 발행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금융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 금융상품의 접근성을 개선할 방법을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블록체인 기술에 주목했다.

그가 제시한 대표적인 사례는 17년간 생활했던 가나의 국채 투자 환경이다. 가나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개인투자자가 구매를 희망하더라도 실제 투자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는 여러 장벽이 존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곽 대표는 은행 및 증권 계좌 개설, 최소 투자 금액 등의 조건이 개인투자자의 금융상품 접근성을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러 중개 기관이 거래에 관여하면서 발생하는 비용 역시 소액 투자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개발하기보다 기존 금융상품을 투자자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금융상품의 전달 방식과 거래 기록을 관리하는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에 주목했다.

곽 대표는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금융 거래 기록을 관리하고 권리를 확인하는 방식을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디지털 환경을 통해 자금이 필요한 주체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범위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전통 금융과 웹3 투자자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곽 대표는 리베라의 고객을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발행자'와 '자금을 운용하려는 투자자' 등 두 부류로 구분했다.

발행자 측은 기존 금융상품과 운용 역량을 갖춘 자산운용사 등 금융기관이다. 이들은 새로운 투자자층에 상품을 제공하려는 수요가 있다.

반면 투자자 측에서는 암호화폐와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 자산을 보유하면서 전통 금융상품에도 투자하려는 수요가 존재한다.

곽 대표는 "디지털 자산 투자자가 기존 금융상품에 투자하기 위해 반드시 보유 자산을 법정화폐로 전환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디지털 자산 환경을 유지하면서 기존 금융상품의 운용 성과에 접근하고, 투자 자산을 토큰 형태로 보유하고 활용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리베라는 이러한 양측의 수요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자산운용사가 기존 금융상품을 토큰화된 형태로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과 인프라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곽 대표는 리베라의 역할을 전통 금융과 디지털 자산 시장을 연결하는 '징검다리'에 비유했다. 기존 금융기관의 운용 역량을 새로운 투자자층에 제공하고, 디지털 자산 투자자에게는 전통 금융상품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웰링턴 매니지먼트 협업…토큰화 금융상품의 실제 적용

곽 대표는 리베라의 사업 모델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로 글로벌 자산운용사 웰링턴 매니지먼트(Wellington Management)와의 협업을 소개했다.

그는 웰링턴의 자산운용 역량을 활용하면서도 투자 자산을 토큰 형태로 보유하려는 웹3 투자자의 수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리베라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웰링턴과 협업하고 싱가포르에서 관련 금융 구조를 마련했다.

리베라는 금융기관이 기존 금융상품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토큰화 기술과 관련 인프라를 지원한다. 직접 자산을 운용하기보다 기존 금융기관의 운용 역량과 디지털 자산 투자자를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곽 대표는 해당 협업에서 "금융상품을 단순히 토큰으로 발행하는 것뿐 아니라 토큰 보유자가 실제로 어떤 권리를 갖는지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토큰화의 핵심은 투자자의 법적 권리 보장

곽 대표는 토큰이 특정 자산을 나타낸다는 설명만으로는 금융상품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정 토큰이 실물자산을 나타낸다고 주장하더라도 투자자는 발행 주체가 누구인지, 그 주장을 신뢰할 수 있는지, 발행 주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신의 권리가 어떻게 보호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토큰과 실제 자산의 관계가 특정 발행자의 약속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기술적으로 금융상품을 토큰화하는 것과 투자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베라 투자 라운드 참여 기업
리베라 투자 라운드 참여 기업. 자료=리베라.

이러한 관점에서 곽 대표는 싱가포르의 법률과 금융 규제에 기반한 상품 구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리베라는 올해 3월 싱가포르 통화청(MAS)으로부터 자본시장서비스(CMS) 라이선스를 취득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 6월에는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조성업체 GSR이 주도한 전략적 투자 라운드에서 1,400만 달러를 유치하며 토큰화 인프라 사업 확대를 위한 자금을 확보했다.

이번 투자에는 국내 교보생명보험그룹을 비롯해 Kaia Investment Partners 등도 참여했다. 특히 교보생명은 국내 계열사를 중심으로 실물연계자산(RWA) 토큰화와 디지털 자산 활용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크리스 신 교보생명 글로벌 전략적 파트너십 책임자는 당시 공식 발표를 통해 전통 금융과 온체인 인프라 간 융합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국내 금융상품 출시나 한국 시장 진출 계획은 확인되지 않았다.

곽 대표가 이번 인터뷰에서 강조한 리베라의 사업 방향은 기존 금융상품을 더 많은 투자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전달 구조를 개선하는 데 있다.

전통 금융기관의 운용 역량과 디지털 자산 투자자의 수요를 연결하는 동시에 토큰이 나타내는 실제 자산의 권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